티스토리 뷰

 

이번 소재를 문서 상단에 적고 시작하니 꼭 내가 구제불능의 불평불만꾼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슬몃 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한번쯤은 이 화두의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세계와 인간이 합일되어 있던 신화의 시대를 지나 역사 시대로 접어들면서 어쩌면 필연적인 일일 테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에 따라 세계에 아무 불만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계의 횡포를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잇지 못하는 사람까지의 스펙트럼이 있을 것이다.

 

나를 둘러싼 주위 환경을 세계라고 할 때, 나는 세계에 비굴한 표정과 자세를 취하며 유년 시절을 통과해온 것 같다. 지적 호기심이 많아 집에 있는 책은 물론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도 그 집 책장에서 눈길을 잡아끄는 책을 붙들던 어린이는 독서에의 열정에 과하게 사로잡혀 또래와의 교류에는 그닥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나다 보니 다행히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서로 불편한 사람과는 멀어지기도 하며 중학교 졸업반이 되었다. 집단따돌림 등 학교폭력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그 상황의 원인을 돌리면 안된다고 배웠는데 일종의 방어기제인지 혹시 모를 나의 성격적 결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는 건 반사적으로 닿고 마는 사고이다.

 

지금에 와서는 별 이유 없이 자신들의 내집단 외부에 있는 공공의 놀림감을 정하고 공격적인 말과 행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발산했으리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당시 문제집 내지에 그 해의 달력을 적고 하루하루 날짜를 지워 나가며 졸업만을 기다렸던 그 때의 내게는 지금 알려준다고 해도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학교폭력 피해로부터 생존하고 삶을 재건하면서 오랫동안 흔적을 남긴 것은 집단에서 배척될지 모른다는 공포와 그로부터 출발하는 비겁함이었다.

 

학부 2학년이 되어 맞은 개강총회 자리에서는 1학년들을 내보낸 채 신고식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작년에는 왜 이런 걸 해야 하냐면서 선배들을 욕했던 동기들이 지나고 보니 좋은 추억이지 않냐며 이렇게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거라면서 헛소리들을 해댔다. 거수로 투표가 이뤄졌고 반대는 나를 포함해 단 두 표뿐이었다. 그 뒤로도 계속 생각했다.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피력하다가 과내에서 매장당하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에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힘을 내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그 뒤로 삶 속에서 마음을 나누며 기댈 수 있는 좋은 벗들과 함께 할 수 있었고 그 속에서 거의 있는 그대로의 내가 수용되는 경험을 통해 지난 망령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계의 다양한 모순을 직시하며 시간과 열의를 쏟아왔다. 철거민, 해직자 노동조합원, 장애인, 비정규직, 여성, 성소수자,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당연의 세계에 균열을 내기 위해 싸움을 멈추지 않는 주체들과 함께하는 경험은 나를 계속해서 성찰하게 했다. 내가 운 좋게, 우연히 지니고 있을 뿐인 알량한 강자성에 도취되지 않고 소수자의 시선을 마음에 품고 행동하는 시간이 계속해서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세계와 끊임없이 불화하기 위해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많은 에너지가 소요된다. 계속 세계를 해석하고 변혁해나가기 위해 아침 저녁으로 운동을 거르지 않고 가급적 몸에 부담되지 않는 재료들로 직접 끼니를 챙기는 것은 생활의 토대를 탄탄히 다지는 일이다. 거기 더해 삶을 공유하고 싶은 벗들과 시간과 마음을 나누며 틈틈이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기, 무엇보다 일에 자신을 내주지 않고 중심을 잘 잡아야 건강하게, 오래오래 세계와 맞설 수 있겠지. 거대한 세계의 횡포에 무너지지 말고, 아니 무너지더라도 다시금 일어설 수 있으며 끈덕지게 해나가고 싶다.

 

 

'소소한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 학년 새 학기>(3월 1주)  (0) 2021.07.22
<영혼을 달래는 음식>(2월 3주)  (0) 2021.07.22
<봄>(2월 1주)  (0) 2021.07.22
<마음을 돌보는 일>(1월 3주)  (0) 2021.07.22
<2020년 매듭 짓기>(12월 4주)  (0) 2021.07.22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