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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글쓰기

<봄>(2월 1주)

쫑티 2021. 7. 22. 21:36

 

 

해가 지는 걸 보면 아쉽다가도 때가 되면 다음 날의 해가 뜨듯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려면 야외 활동만한 게 없는데 코로나192020년을 송두리째 삼킨 터라 새순이 나고 봄꽃이 피고 신록이 빛나고 매미가 우는 시간을 마스크와 함께 실내에서 주로 보내야 했다. 단풍이 물들다 지고 서리가 내릴 때도, 눈이 내리고 해가 토끼 꼬리만큼 짧아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밤낮 기온의 오르내림으로도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야 있다. 그렇지만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 대책 속에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상황에 지친 동료 시민들의 얼굴에 가득한 수심을 보면 작년은 온통 혹독한 겨울 같다.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일자리를 잃거나 영업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의 어려움과는 무관하게 월세와 이자 등 고정비용은 계속해서 발생한다. 12월 하순의 어느 밤, 떡볶이를 사러 외출했다가 월세는 쉬지 않습니다라고 큼지막히 써붙인 공인중개사 사무실의 문을 발로 차 부수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 그것도 주로 사회적 약자에게 당장의 생존이 걸린 상황마저 가진 자들에게는 재산 증식의 기회일 뿐이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사회적 연대, 동료 시민과 공공선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떵떵거리고 사는 세상에 무슨 미래가 있을까 싶다.

 

웃음기를 잃은 얼굴들이 분주하게 거리를 오가는 풍경에 봄은 왔건만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온 것 같지 않다던 왕소군의 고사가 오버랩된다. 그래도 사람들은 희망을 놓지 않고 안간힘을 다해 버텨낸다. 위기의 순간에 가장 약한 고리부터 끊어지고 서서히 쓰러지는 와중에도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을 기다리듯, 문제 상황이 극복될 미래를 눈 속에 가득 담아 보며 버텨낸다. 일년 중 가장 추운 달이라는 1월도 다 지나갔으니 앞으로는 기온이 풀리고 언 땅이 녹고 개구리가 잠에서 깰 일만 남은 것이다.

 

이런 시점에는 봄이 다가오는 순간을 떠올리며 몸과 마음을 위로하는 건 어떨까. 마음이 미래에 살 때 현재가 한없이 우울해진다지만 지금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때는 시쳇말로 행복회로를 돌려보는 것도 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일 수 있겠다. 우선 해 뜨는 시각이 점점 당겨지는 데서 봄이 오고 있음을 체감한다. 202월부터 이른 아침에 일어나 준비 운동을 마치고 러닝화 끈을 단단히 조이는 일과를 지키고 있다. 규칙적으로 같은 시간대에 밖에서 뛰다 보면 2월 초까지만 해도 정리운동을 마칠 때까지 깜깜하던 하늘이 차츰차츰 밝아지는 시간이 빨라지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다. 5월 중순쯤 되면 한창 달리고 있을 06시 무렵에는 눈이 부셔 선글라스가 필요하지 않나 고민하게 된다. 이렇게 차츰차츰 길어지는 해는 하지를 정점으로 다시 짧아지다 황진이가 한 허리를 베어내고 싶다던 동짓날이 오고 계절이 한 바퀴를 굴러간다.

 

낮의 길이뿐 아니라 공기 내음에서도 봄이 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외출할 때면 언제나 마스크를 쓰기에 실감할 일이 적지만 집에만 갇혀 있기 너무 답답한 주말이면 채비를 해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외진 공원에라도 가본다. 나갈 결심을 하기 전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는 건 필수다. 주위를 둘러보고 시야에 나 외의 다른 사람이 없을 때면 슬쩍 마스크를 내리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소리가 날 만큼 크게 내쉬어본다. 겨울 공기와 봄 공기는 역시 그 온도에서 큰 차이가 난다. 코가 뻐근해지는 한기와 딱딱한 느낌의 전자에 비해 후자는 따스하고 부드럽다. 코로나19 상황 이전에도 겨울 달리기를 할 때면 숨쉴 때마다 폐까지 얼어붙는 것만 같아서 늘 천마스크를 써야 했다. 물론 올해는 봄이 오더라도 연말까지 마스크를 벗지 못할 것 같지만 그래도 똑같이 마스크를 써야 한다면 덜 추운 게 낫다.

 

이렇게 계절에 대한 감각은 시공간을 두루 걸쳐 온몸으로 겪는다. 그렇게 몸과 마음에 차곡차곡 쌓인 시간들이 또 다가올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을 헤쳐나갈 힘과 용기를 줄 것이다. 나를 둘러싼 주위 환경의 변화를 기분 좋게 받아들이며 더 유연하고 보다 활기차게 삶을 가꾼다면 어떤 계절의 한가운데서도 스스로를 굳게 지키며 행복을 만들어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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