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화장실에서 이런 문장을 보았다. “마음이란 참으로 신기합니다. 내게 속한 것이면서도 내가 온전히 할 수 없어 두렵기만 합니다.”라는 문장이었다. 아마도 화장실 환경 개선을 위해 학생자치회 임원들이 문구를 고르고 손글씨로 꾸민 것을 코팅한 것이겠지. 평범하게 옳은 말이기에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동족들보다 저 문장이 시선을 잡아챈 건 늘상 하는 고민이 담겨 있어서다. 하루에도 열세 번씩 널을 뛰는 마음을 어르고 달래서 얌전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마음의 문제는 같이 울어줄 사람이 있다고 해도 결국 본인에게 귀속된다는 점에서 스스로 돌볼 방법을 궁리하고 시도해나가야 한다.

 

마음을 돌보는 방법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요가가 떠오른다. 11월에 목 디스크 진단을 받고 재활 운동을 알아보다 Nike Training Club 어플에서 요가 여섯 세트를 찾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퇴근하고 바로 플랭크와 요가를 착착 하면 하루에 한 시간 반씩 운동할 수 있다. 온 몸 여기저기의 긴장과 이완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흐르는 땀도 일렁이는 마음을 진정하는 데 좋지만 그보다는 호흡이 중요하다. 깊게 들이쉬고 소리가 날 정도로 내쉬라는 코치의 음성 안내에 따르다 보면 자연스레 숨에 집중하게 된다. 모든 동작을 마치고 사바사나, 송장 자세로 누워 손바닥이 천장을 향하게 한 채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편안한 호흡을 취할 때면 창 밖의 소음도, 보일러의 구동음도 아무래도 괜찮다. 흥분해 날뛰던 마음이 고삐 없이도 진정해 내 몸 옆에 같이 누워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생각이 끝간 데 없이 수 갈래로 뻗는데 갈피를 잡지 못할 때도 마음이 어지럽다. 이렇게 생각을 위한 생각에 파묻힐 것 같을 때는 집 밖으로 나서는 게 좋다. 충분히 몸을 데워주고 몸에 너무 버겁지 않은 페이스로 두 발을 움직이면 일정한 속도로 달릴 수 있다. RunDay 어플로 달리기를 시작했던 4년 전만 해도 지금의 변화를 상상할 수 없었지만 지금의 나를 소개할 때 러닝은 빼놓을 수 없는 열쇳말이다. 아무리 바빠도 주에 이틀 이상은 달릴 시간을 내는 이유는 생존 체력과 체중 감량을 위한 것만큼이나 잡념을 떨치기 위함이 크다. 달리는 동안에는 오롯이 두 발의 감각과 호흡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평범하게 사회화된 인간이라면 직업, 가족, 친구 등 여러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게 보통이다. 그 모든 것들과 잠시 거리를 둔 채, 현재를 압도할 것만 같은 생각의 부피와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온전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순간이 달리는 와중에 찾아오기에 무릎 연골을 수술하고도 보호대를 차 가면서까지 달리기를 그만두지 못한다.

 

마음을 돌보는 데 큰 공헌을 하는 것 중 하나는 요리다. 배달 음식이나 밀키트에 의존하지 않고 마트에서 양배추와 달걀을, 인터넷으로 파스타를 산다. 탈가정한 지 반 년이 넘는 동안 한 달에 한 번도 배달음식을 시켜먹지 않으면서도 식품영양자전거를 거뜬히 탈 수 있는 이유는 취사병으로서의 경험 덕이다. 거기 더해 밥에 구애받지 않는 성품이라 빵과 면만으로 반 년은 충분하다. 밥은 급식으로 족하다. 때문에 가끔 급식에 스파게티나 잔치국수가 나올 때는 조금 당황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한 끼를 채우는 건 같다. 이런 얘기를 하면 친구들은 누구라도 놀란다. 몇 년 전부터 늘 홈파티의 주최자로 불과 술 앞에서 날아다니던 모습을 기억하는 이라면 누구든 낯설어할 모습이다. 어쩌겠는가. 끼니를 해결하는 것만큼이나 직장 생활과 여가를 즐기는 것은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크 푸드를 입에 대지 않고 나름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들여 솜씨가 담긴 식사를 해먹을 수 있는 건 내 삶의 큰 자원이다. 영양 실조를 걱정하지 않고 질리지 않게 이것저것 해먹으면서도 딱히 가계부를 걱정하지 않는, 원가족으로부터 벗어난 청춘이 얼마나 되겠나 하면 절로 뿌듯하다.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날 양배추를 손질하면서 싫은 사람의 머리라고 생각하거나 하는 악취미는 접어두자. 팬 속 재료가 익어가는 소리나 도마 위의 규칙적이고 경쾌한 음률과 몸이 하나 될 때면 일상에서 받은 여러 손상들이 물크러져 달달해지는 것만 같다. 트위터에서 본 표현이지만 상처받은 시간들을 달달한 기억과 오래 졸이면 맛있는 잼이 된다고 했던가. 마음을 돌보는 과정 역시 그러하겠지.

이렇게 생각할 때, 결국 마음을 돌본다는 것은 나의 삶에서 균형을 찾고 그를 통해 자신만의 속도로 꾸준히 나아가기 위함이다. 일상을 꾸려나가면서 뜻하지 않은 외부의 시련에 상처받은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끌어모으는 것이다. 이 과정이 반드시 오직 혼자만의 몫은 아니며 특히 나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본인과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회복하곤 했다. 그러나 2020년을 집어삼킨 코로나19의 그림자 속에서 누구든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었겠냐만 취직과 탈가정 등 신변의 급격한 변화를 마주한 나는 더더욱 괴로웠다. 앞서 열거한 여러 가지 마음을 돌보는 법은 그런 한 해를 보낸 내가 외로움과 우울함에 마냥 마음을 내어주지 않기 위해 발버둥친 기록이기도 하다. 모쪼록 그런 시도들을 발판 삼아 시행착오를 줄이고 항상심을 지키는 2021년을 만들어가고 싶다.

 

 

'소소한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혼을 달래는 음식>(2월 3주)  (0) 2021.07.22
<봄>(2월 1주)  (0) 2021.07.22
<2020년 매듭 짓기>(12월 4주)  (0) 2021.07.22
<나의 욕망>(12월 1주)  (0) 2021.07.22
<나의 인간관계>(11월 2주)  (0) 2021.07.22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