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의 문장: “음산한 바람 불고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바다 기운이 산속 깊은 석굴까지 이르네 이 밤 덧없는 인생 흰머리만 남았기에 등불 켜고 때때로 초년의 마음을 돌아본다” 이주(1468~1504), 「밤에 앉아서」 2. 감사일기 1) 해돋이를 볼수 있어서 감사하다. 2) 복싱을 갈 수 있어서 감사하다. 3) 게임을 새벽까지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3. 오늘의 아침 뉴스 1) 1/1(토) 안산, 단원 골판지 제조공장에서 대형 기계 사이 끼임 사고로 40대 노동자 1명 사망 2) 총선·지선, 고3도 출마 가능…피선거권 만 25→18세 3) 12월 외식물가 4.8% 상승, 10년만에 최대 상승률 4) 신규확진 3000명대, 오늘부터 방역패스 유효기간 적용
두려워 벌벌 떨며 조심하기를 마치 깊은 연못에 임하듯 하고 살얼음을 밟고 가듯 해야 하는 것을. 『시경』 삼가고 또 삼가야 하는 걸 모르고 내키는 대로 행동하다 자신과 타인을 파괴하는 이들을 보면 구역질이 난다.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은 해야겠지. 친구가 쇼펜하우어의 글을 보내줬다. "비루하고 보잘것없는 사람까지도 존중하라. 모든 사람 안에는 우리 안에 사는 영혼과 똑같은 영혼이 살고 있다. 어떤 사람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혐오스럽더라도 '세상에는 온갖 사람이 다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라. 그런 사람에게 혐오감을 드러낸다면, 첫째로 정의롭지 못한 것이고, 둘째로 그들에게 결사적인 싸움을 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가 어떤 사람이건 인간은 쉽게 자신을 바꿀 수 없는데,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우리와 싸우는..
"존귀하게 되는 까닭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는 그 존귀함을 영원히 잃지 않는다." 사마천 『사기 열전』 「세계인권선언」에서 이미 천명한 바 있다. "모든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고, 똑같은 존엄과 권리를 가진다."고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못난 면은 그런 공리를 비웃으며 존중받아야 마땅한 사회적 약자를 타자화하고 폭력을 일삼기도 한다. 내일 마침 1교시 없어졌으니 출근해서 가해 추정 관련 학생들 다 불러다놓고 조사하고 사안 보고해야지. 조사 마치는 대로 교장에게까지 공유하고 화요일에 전담기구 열어서 개최 요청 해야겠다. 하다하다 장애 학생을 괴롭히다니 비열한 인간들.. 생각 같아서는 학교 밖으로 쫓아내고 싶다. 의무교육이라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따름, 이번 일에 대한 조치를 계기로 내면은 몰라도..
면, 명과 복을 상징하는 탄수화물 삶을 이어나가는 데 기여하는 주식 달리기, 삶과 닮은 데가 여러 모로 많은 열정의 불을 옮겨붙이는 부싯깃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삶의 한 기둥 돈, 얼마가 있어야 충분한지 알겠는데 그 값과 현실 간의 괴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벼락거지 운운을 접할 때마다 조급해지고 조바심 나는 마음을 달래기 쉽지 않다. 술,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줄여야 하는데 이것조차 없다면 내 심적 안정은 어디로 가는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날 때, 혼자 있을 때에도 호흡을 느꾸워주는 윤활유. 멀리할수록 지갑에나 건강에나 이롭다는 걸 알기에 이 아닌 다른 방향의 배출구를 부단히 찾는 중 자동차, 가장 비약적으로 삶의 풍경을 바꿔준 도구. 취직하고 이전보다 교통편의가 열악한 ..
도는 텅 빈 그릇과 같아, 아무리 채워도 채울 수 없다. 노장의 텍스트 자체가 숱한 역설로 이루어져 있지 않나. 당장 첫 머리가 그 유명한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이니까. 삶에 숱한 역설이 존재하기에 그런 텍스트들로부터 위로받을 수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생활은 온갖 모순으로 가득하고 그런 모순들에 덤덤해져 가면서 하루하루 성숙해가는 게 아닐까. 물론 성숙의 끝은 육체적, 정신적 노화로 이어지고 일종의 정상성 획득에 관한 기준에까지 정점을 찍고 그 이후로는 하락하는 거라고 볼 수 있겠지. 무수한 역설로 가득한 삶은 어차피 끝나기 전까지 지속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 발버둥친다. 이왕이면 그 과정이 덜 괴롭고 더 행복하면 좋겠지. 최대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으며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내는 사람이..
"중요한 것은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슬퍼하는 것이다. 아이가 비뚤어진 길을 걸어와서 그렇게 고독한 모습으로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슬픔 말이다. 화를 내지 말고 슬퍼하라. 복수가 아니라 연민의 정을 가지는 것이다. 교사는 슬픔을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런 사람은 적어도 당면한 교육의 현실을 적절한 의도와 노력을 통해서 정복하고 승리를 구가하는 자는 아니다. 오히려 최선의 의도와 노력이 난파를 당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교사란 이러한 상황을 온몸으로 짊어질 수 있는 자이다." - 야누슈 코르착
겨울바람이여 볼이 부어 쑤시는 사람의 얼굴 - 『바쇼의 하이쿠』 오늘의 일력 문구는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로 먼저 접한 마츠오 바쇼의 하이쿠다. 하이쿠 하면 자연스레 향가를 떠올리고 저번 학기에 3학년 시 수업에서 「제망매가」, 「서동요」를 수업했던 기억으로 흐른다. 재작년처럼 올해 다시 3학년을 맡게 되더라도 시수 배분을 어떻게 할지 불확실하니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고려해서 준비해야겠다. 여전히 교사 네 명에 16학급이니 64시수를 4로 나누면 16시간씩 하게 되겠지. 이때 아예 제가 18시수 할 테니 남은 46시수를 잘 조정해보시라 하고 싶은데 그게 될지 모르겠다. 작년에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어필했는데 그렇게 하면 1, 2, 3학년 걸치는 사람이 생기길래 단념했는데.. 이번에도 그런 상황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