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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p

 한낱 상품 광고에 너무 진지하고 비판적인 반응을 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소한 것이 결코 사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익숙한 형식으로 반복되는 스테레오타입은 인종주의에 끈질긴 생명력을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힘 가운데 하나다. 

 

25p

 콘베르소(converso), 즉 개종한 유대인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그들은 우리와 '핏줄'이 다르다는 생각을 낳았으며, 문화나 종교의 차이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몸속 깊숙이 본질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의식으로 이어졌다. '피'가 다르기 때문에 개종해도 동화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심지어 콘베르소와 유대인의 몸에서는 특유의 냄새가 난다는 기록까지 있었다. '피의 순수성'과 '상상의 생물학적 특성'에 대한 집착은 인간에게 동물의 혈통이나 품종을 가리키는 스페인어 '라사(raza)'를 적용하도록 이끌었다. 1611년 편찬된 최초의 스페인어 사전은 '라사'를 두고 말의 품종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무어인이나 유대인 혈통을 가진 사람을 조롱하는 단어라고 뜻풀이했다. 

 

27-28p

 프랫도 지적하듯이 유럽인과 비유럽인의 만남은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비대칭적 접촉이었지, 결코 예의 바르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진 조우가 아니었다. 유럽인에게만 '신대륙'이었던 아메리카는 콜럼버스의 '도착' 이래 학살과 파괴, 저발전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상호적이지만 호혜적이지 않았던 접촉에서 유럽인은 전 세계의 동식물과 인간을 관찰하고 분류하며 정복했다. 아메리카를 비롯한 비유럽 세계는 인종 개념을 생산하는 작업장과 같은 역할을 했다. 무력에 의한 정복뿐 아니라 분류학을 통한 비유럽 세계의 유럽 학문 체계 안으로의 통합, 다시 프랫의 말을 빌면 '반정복의 정복'이야말로 근대 유럽 주체와 비유럽 타자 사이에서 발생한 만남의 정체였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는 폭력을 수반했다. 하지만 물리적 폭력만이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를 지탱하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었다. 식민지 타자를 폭력적 정복으로 제압하는 동시에, 유럽적 세계관과 지식체계 아래로 포섭해 종속시키는 '반정복의 정복'은 더 철저한 '궁극의 정복'이 될 수 있었다.

 

44-45p

 포유류가 공유하는 많은 특징들 가운데 유독 젖가슴에 주목한 린네의 명명에 내포된 젠더정치적 의미는 무엇일까? 젖가슴은 암컷뿐만 아니라 수컷도 갖고 있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분류체계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말리아는 젖이 나오는 여성의 젖가슴을 곧바로 연상시킨다. 남성에게는 나오지 않는 젖이 여성에게서 분비된다는 사실은 남성에 비해 여성이 동물에 가깝다는 판단을 암시한다. 젖가슴과 모유수유에 대한 관심은 한편으로 여성의 생명 생산능력에 대한 찬양이지만, 한편으로 여성을 생식과 양육이라는 생물학적 역할에 묶어두는 결과를 낳는다. 더구나 당시는 모유수유를 미덕으로 여기는 담론이 등장하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의 젖가슴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발휘해야 하는 예비된 모성을 상징했고, 이는 여성에게 육아의 역할을 전담케 하는 명분을 제공했다. 결국 린네의 분류학은 18세기 중반 젠더정치에서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분업을 정당화하고 성별분업 이데올로기가 형성되는 데 일조했던 것이다.

 

109-110p

 그렇다면 노예노동은 왜 필요했을까? 아메리카 대륙에 사탕수수 재배가 시작되고 이를 바탕으로 대규모 플랜테이션을 운영하고 설탕 산업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산업혁명을 추동한 면직물 산업의 원료인 면화 역시 강도 높은 노예노동 없이는 싼 가격으로 많은 양을 공급할 수 없었다. 플랜테이션 농업 초기에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노동력이 투입됐다. 하지만 유럽인의 아메리카 정복 과정에서 자행된 무자비한 학살과 유럽인이 퍼뜨린 질병으로 인해 주민 인구는 3분의 1로 격감하고 말았다. 노동력 확보가 어려워지자 유럽에서 죄수나 빈농, 빈민을 모집해 연한계약노동자로서 아메리카로 송출했으나 수요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자 아프리카의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에 눈을 돌렸던 것이다. 원주민의 급격한 감소와 백인 계약노동력 부족이 흑인 노예제의 원인이 된 셈이다.

 

111p

 경제사가 스벤 베커트도 노예제와 자본주의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베커트에게 노예제와 자본주의의 연결고리는 '백색 황금', 즉 면화였다. 2014년에 나온 저서 <면화의 제국>에서 베커트는 발생 초기의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데 '상업자본주의'라는 친숙한 개념 대신 '전쟁자본주의'라는 새 개념을 제시했다. 베커트의 전쟁자본주의 개념은 상업자본주의 시대에 벌어진 폭력의 여러 양상을 직시하게 만든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주권국가들 사이의 폭력적 대결인 전쟁 개념을 노예제 폭력에도 적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이런 개념적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구는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 빈번히 발생했던 해외 식민지 쟁탈을 위한 유럽 각국의 왕조전쟁과 식민지 경제를 지탱한 노예노동에 대한 관심을 새로이 불러일으켰다. 노예제는 자본주의로 대체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내장된 제도였고, 노예노동은 자본주의의 발달에 부차적 요소가 아니라 본질적 요소였다는 것이다. 

 

118-119p

 

 노예란 말을 잃어버린 존재다. 읽고 쓰기를 배우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는 것은 물론 주인에게 말대꾸를 해서도 안 되는 존재가 노예다. 반항하는 노예를 징벌할 때 쓰는 아이언 머즐이라는 철로 만든 입마개는 목소리를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먹고 마시는 것도 금지된 극한 상황에 놓인 노예를 상징한다. 목소리는 몸을 통해 생성된다. 몸에서 울려 나오는 것이 목소리다. 노예가 말을 한다는 것,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노예의 육체에 덧씌워진 열등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다. 이런 의미에서 노예였던 에퀴아노가 자서전을 썼다는 사실은 노예제와 인종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흑인이 원래 열등하다는 부당한 명제를 반박하는 살아 있는 증거다. 스스로 말하는 노예는 백인 노예제폐지 운동가들이 캠페인에 즐겨 활용했던 수동적인 노예 이미지와 대조를 이룬다. "나는 인간도 형제도 아닙니까?"라고 울부짖으며 해방을 애원하던 노예의 수동성은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노예에게서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퀴아노의 흥미로운 이야기>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다. 때로는 모순된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오기도 한다. 우선, 에퀴아노의 이름부터 여럿이다. 노예 주인은 노예에게서 본래의 이름을 박탈한다. 제멋대로 붙인 이름으로 노예를 호명하는 것은 노예를 길들이는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136-137p

 노예의 고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제대로 된 역사적 재현과 성찰로 곧바로 이어지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오히려 치유 불가능한 트라우마를 너무 쉽게 전유하는 행위는 '공감'이 아닌 '연민'만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노예를 수동적 주체로 재현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남기지 않을까? 왜 노예는 항상 사슬에 묶인 모습으로 재현되어야 하는가? 무릎을 꿇고 "나는 인간도 형제도 아닙니까?", "나는 여성도 자매도 아닙니까?"라고 애원하는 남녀 노예의 이미지는 19세기 백인 노예제폐지 운동가들이 만들어내길 원했던 '침묵하는 희생자'에 딱 들어맞는다. 이런 노예는 전혀 위험하지 않다. 시혜를 베풀어주어야 비로소 인간이 되는 비인간에 불과하다.

 

185-186p

"여러분, 이렇게 야단법석인 곳에는 뭔가 정상이 아닌 게 있음이 틀림없어요. 내 생각에는 남부의 검둥이와 북부의 여성 모두가 권리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니 그 사이에서 백인 남성들이 곧 곤경에 빠지겠군요. 그런데 여기서 얘기되고 있는 건 전부 뭐죠?

저기 저 남성이 말하는군요. 여성은 탈것으로 모셔 드려야 하고, 도랑은 안아서 건너드려야 하고, 어디에서나 최고 좋은 자리를 드려야 한다고. 아무도 내게는 그런 적 없어요. 나는 탈것으로 모셔진 적도, 진흙구덩이를 지나도록 도움을 받은 적도, 무슨 좋은 자리를 받아본 적도 없어요.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날 봐요! 내 팔을 보라구요! 나는 땅을 갈고, 곡식을 심고, 수확을 해왔어요. 그리고 어떤 남성도 날 앞서지 못했어요. 그래서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나는 남성만큼 일할 수 있었고, 먹을 게 있을 땐 남성만큼 먹을 수 있었어요. 남성만큼이나 채찍질을 견뎌내기도 했어요. 그래서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나는 13명의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들 모두가 노예로 팔리는 걸 지켜봤어요. 내가 어미의 슬픔으로 울부짖을 때 그리스도 말고는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그런 일을 사람들이 머리와 관련해 얘기할 때 뭐라고 부르죠? (청중 속에서 중얼거린다. "지성") 맞아요. 그거에요. 지성이 여성의 권리나 흑인의 권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죠? 나의 잔이 1파인트도 담지 못하고, 당신의 잔이 2파인트를 담고 있는데, 당신은 내 보잘것없는 절반 크기의 잔을 채우지 못하게 할 만큼 야비하지는 않겠죠?

저기 검은 옷을 입은 작은 남자가 말하네요. 여성은 남성만큼의 권리를 가질 수 없다고요.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여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요! 당신들의 그리스도는 어디서 왔죠? 어디서 왔느냐고요? 신과 여성으로부터 왔잖아요! 남성은 그리스도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죠.

신이 만든 최초의 여성이 혼자서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 만큼 강했다면, 이 여성들이 함께 세상을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지금 여성들이 그렇게 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게 더 좋을 겁니다.

내 말을 들어야만 해요. 이제 늙은 서저너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

 

 트루스는 위의 연설에서 연약하고 무기력한 여성성을 거부하고 농장과 들판에서 남성과 똑같이 노동하는 흑인 여성의 삶의 토대 위에서 여성성을 다시 정의하려고 시도했다. 누구보다도 강렬한 웅변조로 여성이자 흑인 노예인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여성이나 노예 어느 한쪽에 따라 개념화하는 게 부당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트루스의 시도는 인종주의에 대한 저항일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의 중요한 성과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중 차별을 모두 공격할 수 있는 입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187p

 1980년대 말 블랙페미니즘에서 나온 교차성 이론은 인종, 계급, 젠더 세 범주 중 어느 하나만으로 결정되거나 환원되지 않는 차별의 복합성을 규명하기 위해 제시된 분석 개념이었다. 인종, 계급, 젠더의 교차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특정한 차별에만 매달릴 때, 어느 차별이 더 끔찍한가에만 집중해 차별의 우열을 겨루는 소모적인 논쟁에 빠져들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작 차별의 복합적인 본질을 놓치고 차별의 구조도 비판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3중 차별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제대로 분석해야만 억압받는 인종, 계급, 젠더의 연대를 꿈꿀 수 있다. 

 

189p

 크렌쇼는 인종과 젠더 중 하나만을 고려하는 단일축 분석틀에 토대를 두는 흑인운동과 여성운동 모두를 비판하며 흑인 여성은 단일축 분석틀 사이의 교차로에서 피해를 입고 있다고 밝혔다. '교차성'이란 말 그대로 흑인 여성은 교차로에 서 있다는 뜻이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이라는 구조적 차별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험하게 서 있는 흑인 여성은 백인 여성처럼 여성으로 대표되지도 못하고, 흑인 남성처럼 흑인이라는 인종으로 대표되지도 못한다. 흑인 남성을 중심으로 구성된 인종 정치학과 백인 여성을 중심으로 구성된 페미니즘 정치학은 흑인 여성의 경험을 배제하거나 왜곡하면서 흑인 여성을 대표성의 공백 상태로 남겨둔다는 것이 크렌쇼의 분석이다. 

 트루스를 시작으로 흑인 페미니스트들은 가정과 일터, 가사노동과 임금노동의 이분법이 유색인 여성이나 노동계급 백인 여성의 삶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가정의 천사'로서 가족에게 따뜻한 보살핌을 제공하는 일은 유색인 여성과 백인 노동계급 여성들의 생활에서 결코 중심이 될 수 없었다. 가정에서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다하면 노동시장에서 임금노동의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분리하고 여성이 있어야 할 곳을 사적 영역으로 한정하는 가정중심 이데올로기는 애초부터 흑인 여성, 유색인 여성 및 백인 노동계급 여성의 삶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200p

 트루스는 정확한 영어를 구사할 줄 알았지만 생애 후반으로 갈수록 문법을 파괴하고, 흑인 특유의 방언을 많이 섞어 말했다. 청중이 열광했기 때문이다. 현실문제는 회피하고 장황하게 먼 과거 이야기만 늘어놓는 목회자와 지식인을 조롱했고, 대학에서 강연할 때면 열심히 노트에 메모하는 학생들에게 자신처럼 머릿속에 메모하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트루스는 도발적으로 말하기를 즐겼다. "나는 책은 읽지 못하지만, 사람을 읽을 수 있다.", "당신은 책을 읽지만, 신께서는 내게 친히 말씀하신다."라고 말이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지적 능력을 지녔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트루스는 비록 문맹이지만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연설했다. (..) 하지만 "나는 읽을 줄 아는 남성 위인들보다 무엇이 옳은지 더 잘 알고 더 잘 행동할 수 있다."라든가 "세상의 모든 악은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만든 건 아니다."라는 트루스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글쓰기와 교육이 불합리한 기성 질서를 정당화하고 재생산하는 데 봉사하는 안 된다는 경고로 들린다. 랑시에르의 말처럼 해방하지 않고 가르치는 자는 바보를 만들 뿐이기 때문이다. 

 

205p

 마거렛은 왜 메리를 살해했을까? 어린 나이에 출산하고 7년간 다섯을 낳는 반복된 임신과 산후우울증으로 인한 정신질환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상습된 강간으로 "영혼을 살해한" 노예주에 대한 저항인가? 노예주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노예주의 재산에 손실을 입히는 행위는 분명 저항이었다. 흑인 여성 노예는 자식을 사랑하고, 탈출을 감행해가며 자식을 있는 힘껏 잘 키우려 하지만 최악의 경우 '살인'인 줄 알면서도 자식을 '살해'했다. 노예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결국 자식살해였던 것이다. 모성에 근거해 모성을 파괴하는 이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가너 사건은 인종과 계급의 차이가 얼마나 모성을 다르게 정의하는지, 사회적 맥락은 모성을 얼마나 달리 발현하게 하는지, 흑인 여성에게 자율적 모성의 실현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알려준다. 동시에 모성은 불변의 생물학적 본능이 아니라 사회, 역사적 맥락에 따라 구성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216p

 유대인은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지역에서 여러 민족과 섞여 살아온 탓에 외모만으로 그 여부를 식별하기가 어렵다. 이와 관련해 2014년 7월 2일 흥미로운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었다. 뉴욕 세인트존스대학 화학과 교수로 있는 해시 레빈슨 태프트라는 유대인 여성의 사연이었다. 그녀의 부모인 레빈슨 부부는 라트비아에서 베를린으로 이주한 유대인이었다. 1934년 유대인 탄압이 날로 심해져 미래가 불안해지던 무렵 부부에게 딸이 태어났다. 이듬해 부부는 예쁜 딸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어 사진관을 찾았다. 그런데 평소 나치의 유대인 탄압에 반감을 갖고 있던 사진관 주인이 나치를 조롱하기 위해 '예쁜 아리아인 아기 선발대회'에 아기 태프트의 사진을 몰래 출품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1등 당선. 태프트의 사진은 1935년 나치 선전 잡지 <집안의 햇살>의 표지를 장식했다.

 

222p

 유대인을 종교적 타자가 아니라 인종적 타자로 보는 시각은 19세기 중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유럽 각국에서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민족국가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자 국가 없이 떠도는 유대인은 점점 더 충성할 조국이 없는 배신자라는 의심을 받게 되었다. 자본주의와 민족주의가 번성하는 근대 세계에서 유대인은 자본주의와 운명 공동체로 보였고, 민족과 민족국가 번영의 시대에 '비민족적 민족', 즉 국가 없는 민족 유대인은 반역자로 낙인찍혔다. 더구나 기독교 사회에 동화된 유대인 가운데 의사, 변호사, 교수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예술과 금융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계층이 생겨나자 이와 같이 성공한 유대인들은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민족주의는 해묵은 반유대주의 감정을 자극했고, 근거 없는 편견을 날조했으며, 한번 만들어진 편견은 차별을 합리화했다. 

 

239p

 인간을 동물로 부르는 것은 불길한 징후다. 인간을 개, 돼지, 늑대, 원숭이, 쥐, 바퀴벌레 등에 빗대는 데는 기본적으로 비하가 담겨 있었으며, 박해와 학살로 가는 서막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대인을 돼지에 빗대는 도상 이미지는 12~13세기부터 시작해 나치 시기까지 계속 이어졌다. 13세기 중반 독일 라인라트 지방에서 탄생한 '유덴자우'는 그림과 조각, 판화로 제작돼 유럽 전역으로 퍼져갔다. '유대 암퇘지'라는 뜻의 유덴자우 도상에서 유대인은 아이의 모습을 한 채 암퇘지의 젖을 빨고 배설물을 먹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됐다. 돼지 젖을 먹는 유대인을 '우리와 같은 인간'에서 분리해 동물화하고 있는 것이다. 레콩키스타가 한창이던 15세기 가톨릭 국가 스페인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은 '마라노'라고 불렸다. 마라노는 더럽고 탐욕스러운 돼지라는 뜻이다. 

 

277p

 아울러 지젝은 브레이비크의 일관성 없고 모순된 논리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외피를 입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브레이비크는 반여성주의자로 심지어 여성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모순되게도 낙태를 지지하고 동성애를 찬성한다고 밝혔다. 지젝은 브레이비크의 논리가 네덜란드의 우파 포퓰리스트 핌 포투인과 닮았다고 본다. 포투인은 2002년 5월에 암살당한 네덜란드의 우파 정치가다. 암살 당시 2주 앞으로 다가온 선거에서 전체 유권자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표를 획득할 것으로 기대되었었다. 그러나 포투인은 모순된 인물이었다. 동성애자이며, 이민자들과 사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타고난 유머 감각을 보였다. 우파 포퓰리스트로서 그의 개인적 특성이나 견해는 완벽하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었다. 요컨대 무슬림 이민자를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외하면 그는 '선량하고 관용적인 자유주의자'였다. 포투인이 구현하고 있는 것은 우파 포퓰리즘과 자유주의적 정치적 올바름의 교차였다. 우파 포퓰리즘과 자유주의적 관용의 대립이라는 이해는 잘못된 것이며, 양자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에 불과하다는 지젝의 예리한 지적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284p

 물론 이슬람문화권에서는 히잡이 반드시 여성 억압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히잡을 착용함으로써 남성의 성적인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 남성과 동등하게 공적인 활동의 장에 나갈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히잡이 여성 억압적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이슬람 국가들마다 사정이 다르고 이슬람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인도 출신 미국 페미니스트 연구자이자 활동가 찬드라 모한티가 지적하듯이 여성들이 베일을 쓰는 것에 접합된 구체적 의미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 따라 분명히 달라진다. 히잡이나 베일을 쓰느냐 마느냐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남성에게 육욕의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 베일로 몸을 가리는 것이나 남성에게 육욕의 쾌락을 선사하기 위해 벗은 몸을 드러내는 것은 결국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294-297p

 오리엔탈리즘은 그 자체가 성적 뉘앙스를 강하게 함축하고 있었다. 중세부터 19세기까지 서구사회에서 '동양'을 구성하는 가장 강력하고 지속적인 이미지는 '하렘'과 '베일'이었다. 하지만 이슬람 여성 이미지가 원래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근대 이전 서양이 바라보는 이슬람 여성은 무력한 희생자가 아니라 능동적 유혹자, 음탕한 여왕이었다. 유럽의 식민지 개척이 본격화되는 17세기를 기점으로 이슬람 여성은 유럽 남성의 은밀한 쾌락이 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하렘은 온갖 성적 판타지가 난무하는 에로티시즘의 무대로, 이슬람 여성은 '하렘'과 '베일'이라는 두 단어로 지시되기 시작했다. 베일은 단순한 의상이 아니라 '벗기고 싶은 대상', '문명화를 위해 벗겨야 하는 기표'가 되었다.

 히잡, 니캅, 부르카, 차도르를 모두 포괄하는 베일이라는 이름은 '베일 쓰기'와 '베일 벗기' 사이에 존재하는 여성의 행위주체성, 선택과 강요 사이의 차이를 가려버린다. 이렇게 문화적 차이와 다양성이 지워진 '베일'은 이슬람과 관련된 온갖 여성 억압과 부정적 이미지의 상징이 된다. 베일 쓴 여성의 이미지는 서구인의 눈에 '이슬람 문제'를 재현하는 방식으로 오랫동안 자리 잡았다. 베일이 이슬람과 여성의 지위에 대해 여러 논쟁을 유발하는 거대한 자석이 되는 이유는 공포, 적대감, 조롱, 호기심, 매혹 같은 복잡하고 모순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재료가 된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런 감정들은 식민주의적 정복과 지배를 통해 경험한 것이었다. (..)

 

 그런데 베일을 쓴 시선은 식민주의자의 의도를 배반한다. 베일은 훔쳐보기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카메라의 눈'을 갖게 한다. 특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감싸는 부르카를 쓰면 '보여지는 것'은 거부하면서 '보는' 시선을 획득하게 된다. 베일 쓰기는 여성에게 '시선의 역전'을 부여해, 수동적인 보는 대상에서 벗어나 능동적 관찰자가 되게 한다. 식민주의자의 손길에 한없이 순응해야 할 식민지 여성이 스스로 보는 눈을 획득하게 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반역인 것이다. '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베일을 쓴 여성의 이런 특징은 무기를 멈추고 은밀한 모반을 계획해 저항운동에 가담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식민지 지배자에게 심어주는 데까지 나아간다. 베일은 카메라가 되거나 무기를 감추는 은신처가 되기에 충분한 것이다. 

 

302p

 소요사태의 자질은 작가이자 이슬람 전문 저널리스트 아룬 쿤드나니가 정확하게 지적한 대로 "폭력에 상처 입은 자들의 폭력"이라는 데 있다. 인종 소요사태는 몇몇 소수의 일탈한 이주민의 난동이 아니라 만연한 빈곤과 지속되는 인종폭력 앞에 달리 저항할 방법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발언하는 방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인종 소요사태는 이주민 2, 3세대의 '인정투쟁'이었다. 1989년 루슈디 사건과 걸프전 이후 영국사회에서는 이슬람교와 무슬림 문화를 악마화하고, 무슬림을 '문제 집단'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해졌다. 정부의 다문화주의 정책은 무슬림 공동체를 보호하기는커녕 '인정의 정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수자 집단으로 만들었다. 백인의 인종폭력에 맞서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과 대치할 때 그들은 자신이 과연 누구인가를 묻고 있다. 왜 '브리티시'이면서 동시에 '파키스타니', '방글라데시'이고 '무슬림'일 수는 없는 것인가? 그들은 주체의 혼종적 정체성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치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가 언급했듯이, 인정의 정치는 정체성에 대한 인정에 그쳐서는 안 된다. 경제적 재분배의 정의에 대한 요구가 소수자의 문화와 정체성에 대한 인정과 결합될 때만이 인정의 정치는 비로소 평등의 실현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304-305p

 남아시아 무슬림 이주민은 어떻게 해서 가해자로 악마화되었는가? 아시안 갱으로 함축되는 무슬림 남성의 공격성은 어떻게 가시화되었는가? 사실 무슬림 이주민 남성의 위험성에 대한 이미지 구축은 1990년대부터 대중매체와 공적 담론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이는 1970~80년대 아프리카-카리브계 흑인 남성의 이미지가 범죄자로 구성되는 것과 유사한 과정을 밟았다.

 그렇다면 희생자와 가해자를 뒤바꿔 놓은 남아시아 무슬림 남성의 공격성이라는 이미지의 실상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백인의 인종폭력과 이에 대한 남아시아계의 대항폭력이다. 인종폭력에 대한 대항폭력이 범죄로 재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계 남성을 어떻게 범죄자로 구성하는가에 대한 연구에서 사회학자 콜린 웹스터는 흑인과 백인, 아시아계 사이에 범죄율의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민 3세대 중에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 비율이 50%에 이르고 청년 실업률이 60%에 달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들의 범죄율은 백인에 비해 결코 높지 않다. 

 폭력과 대항폭력의 아포리아를 배태한 구조적 문제는 무엇일까? 바로 인종주의라는 폭력이다. 인종주의는 '구조적 폭력'일 뿐만 아니라 '극단적 폭력'이다. 에티엔 발리바르에 따르면, 말살이나 대학살, 노예화, 강제된 인구이동 같은 현상만이 '극단적 폭력'은 아니다. '극단적 폭력'을 그는 이렇게 정의한다. "모종의 고질적 지배가 무한정 반복"되고, "사회나 문화의 토대와 일체화되어 폭력으로 보이거나 식별되지도 않는" 폭력이라고. 제도화된 인종주의가 바로 이런 폭력이다. 올덤의 무슬림 공동체와 청년들은 발리바르가 말하는 구조적이며 극단적인 폭력, 즉 제도화된 인종주의에 장기간 노출되어 있는 상태였다. 

 

323p

 이주노동 정책의 근간은 2004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고용허가제'다. 고용허가제는 정착을 인정하지 않는 단기노동이 주제도다. 성년 노동력 생산에 필요한 보육, 교육, 복지비용을 이주노동자의 출신국에서 지출했지만 이에 대한 보상 없이 노동력이 극대화된 연령(20~39세)의 노동자를 단기 고용했다가 돌려보내는 제도이다. 국제엠네스티 보고서에서 비판한 것처럼 단물만 빨아먹고 버리는 '일회용 노동자' 제도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노동력을 불렀는데, 사람이 왔다."라는 말이 있다. 1970년대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터키 노동자를 받아들였던 독일에서 나온 말이다. 독일은 초청노동자라고 부르는 단기이주노동자를 받아들였지만 결국 이들은 독일 사회에 정주를 원했고 실제로 성공했다. 터키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서독으로 간 한국인 광부와 간호 여성들도 정착에 성공했다. 단기노동이주제도의 실패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주노동제도가 허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주는 이루어지며, 오히려 인간이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할 가능성만 높일 뿐이다. 실제로 한국의 고용허가제는 미등록 체류의 증가를 막지 못함, 사업주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회사를 옮길 수 없게 하며, 인종차별에 방패막이가 되지도 못한다. 

 

342p

 부산에 본부를 둔 이주민 인권단체 '이주민과 함께'의 활동가 김나현도 베트남 여성이다. 김나현은 1995년 22세 때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고,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두 아들을 두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택시 운전사가 "너 베트콩이지?"라고 무례한 말을 내뱉자, 그녀는 "남의 나라 침략해놓고 무슨 큰소리냐?"라고 당차게 쏘아붙였단다. 2018년 1월 김나현은 '이주민과 함께'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새로 시작했다. 이주민들이 주도하고 구성하는 '이주민 자원활동가단'을 발족한 것이다. '이주민 자원활동가단'은 그동안 '이주민과 함께'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던 결혼이주여성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는데 부산 지역의 이주민 전체로 범위를 넓혀 동료 이주민들의 어려움을 돕고 지역사회 봉사활동도 펼쳐 나갈 계획이다. 이주민들은 2018년 예멘난민 사태로 촉발된 이주민에 대한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혐오발언을 겪으며, 이주민들이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역할로 기여하는 모습을 더 많이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348-349p

- '불법'체류가 아닌 '미등록'체류

 이주노동자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용어'의 의미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인식전환을 위해 '불체'를 따져보자. 불체는 '불법체류'의 준말이다.

 이주사에서는 '호모 미그란스'라는 개념을 쓴다. 인류는 원래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이주와 정주를 반복한 존재라는 의미다. 집을 떠나고 길을 떠나는 건 인류의 본능적 속성이라는 것이다. '호모 노마드'가 자유롭게 이동하는 인간을 신인류로 이상화하고 있따면, 비교적 최근에 생긴 개념인 '호모 미그란스'는 자발적, 비자발적 이주와 정주를 거듭하며 전개되어 온 인류 역사를 설명하기에 보다 현실적이며 적합하다. 

 본질주의의 위험을 경계하면서도 이주를 인간 본성에까지 확장해보려는 시도가 '호모 미그란스'다. 여기에는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자신이 태어난 땅을 떠나 이주할 권리가 있으며, 자신의 의사에 반해 태어난 곳이나 사는 곳으로부터 강제이주를 당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불법체류자'라는 표현은 잘못됐다. 이주는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상이기 때문에 특정 국가의 체류 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 즉 '불법체류'가 상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불법'이라는 낙인을 인간에게 붙일 수는 없다. 유엔에서도 '불법'체류자를 '미등록'체류자로 고쳐 쓰도록 권고하고 있다. 인간은 지구 어디에든 끊임없이 이주하고 정착하며 살아왔다. 민족국가의 경계가 이주에 장벽을 세워온 것은 근대 이후의 역사일 뿐이다. 한국인은 우연히 한반도에 먼저 정착해 삶을 일구어온 선주민일 뿐이고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이 이주민이다. 이렇듯 인식의 전환은 언어의 교정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366p

<다문화주의와 인종주의>

- 한국의 '다문화' 담론 비판

 다문화주의란 한마디로 '다르게 그러나 동시에 같게 대하라'는 원리다. 다문화주의의 철학적 기초를 제시한 찰스 테일러의 '인정의 정치' 이론은 다수의 영국계 주민과 소수의 프랑스계 주민이 공존해야 하는 캐나다에서 등장했다. 다문화주의는 자유주의만으로는 소수자의 평등한 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돌파하기 위해 나온 원리인 것이다. 요컨대 형식적인 평등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평등을 추구하자는 원리가 다문화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역사가 니시카와 나가오는 다문화주의를 "21세기의 인권선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다문화주의는 본래 인종주의에 방패막이가 되어줄 수 있는 원리다. 영국계, 프랑스계, 북미 인디언 선주민들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캐나다, 영국계 이주민의 나라에서 백호주의를 부정하고 이민사회를 건설한 오스트레일리아, 영제국 지배가 끝나고 구 식민지들이 독립한 후 포스트 식민 이민사회로 급속하게 변모해간 영국에서 '다르게 그러나 동시에 같게 대하기'라는 다문화주의 원리는 인종주의에 저항하고 이주민들이 '여기 있어도 된다'는 존재의 근거를 마련해주는 이념이었다. 존재하고 있는 이주민을 인정하는 최소한의 근거가 된다는 말이다. 쿤드나니는 "다문화주의는 브리튼섬에 들어온 유색인 공동체가 생존과 권리를 요구하고 인종주의에 저항할 수 있는 규범적 근거"를 마련해준다고 말했다. 

 

370p

- 다문화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사실 '다르게, 그러나 같게 대하기'란 매우 어려운 과제다. 다문화주의는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형식적인 자유주의 원리만으로는 소수자들의 권리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자유주의를 보완하는 원리로 나온 것이다. 원리상으로 보자면 다문화주의는 문화적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인정뿐만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평등과 재분배에 대한 요구를 포함한다. 하지만 실제로 다문화주의 논의에서 주로 거론되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을 어떻게 보장하는가의 문제다. 따라서 다문화주의에 대한 첫번째 비판은 문화적 다양성에 집착함으로써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은폐한다는 것이다. 프링저는 다문화주의가 권력관계와 정치적 권리의 배분, 경제적 배분배라는 문제를 문화적 차이로 치환해 탈정치화 해버린다고 비판한 바 있다.

 다문화주의의 탈정치성은 문화와 정체성에 대한 본질주의적 이해라는 다문화주의에 대한 두 번째 비판으로 이어진다. 문화란 언제나 변화하는 것이고 혼종적인 것인데 다문화주의에서는 이를 매우 본질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다문화주의는 소수자 집단의 문화를 매우 동질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경향을 보인다. 소수자 공동체는 단일한 '문화'를 공유하는 동질적 집단으로 취급되고, 구성원들의 개인적 차이와 계급, 젠더에 따른 차이는 쉽사리 망각된다. 집단의 문화적 정체성을 본질주의적으로 파악하게 되면 인간은 그가 태어나 '우연히' 속하게 된 공동체의 특징으로 환원되고, 집단 정체성과 개인 정체성이 갈등을 일으킬 경우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마지막으로 다문화주의는 쉽게 자본의 논리에 종속된다는 비판이 있다. 즉, 문화적 다양성이 쉽게 상품화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오늘날 다문화주의가 정치적으로 적극적 전망을 열어주지 못하는 이유는 다문화가 자본의 자기유지 수단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화폐가 일반적 등가물로서 교환수단의 역할을 온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수많은 새롭고 이질적인 것을 필요로 한다. 결국 '차이'에 대한 열광은 '다문화의 상품화'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또한 지젝은 다문화주의를 다국적 자본주의의 문화논리라고 비판한다. 지젝은 우리가 인종적 소수자와 동성애자의 권리, 독특한 삶의 양식을 향유할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을 때 자본주의는 승리의 행진을 의기양양하게 이어간다고 설파한다. 

 한국사회에서 다문화주의는 결국 또 다른 인종주의라는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먼저 한국에서 인종주의는 무의식적 욕망이 투영된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으며 현재의 다문화주의는 인종주의의 새로운 버전에 다름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 다문화주의는 시민사회의 윤리적 규범으로서 제시될 수 있는 원리인가 아니면 탈정치화된 지배 이데올로기의 새로운 버전에 불과한가? 

 

379-380p

 그렇다면 인종주의가 낙인찍어온 몸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몸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한국사회의 일상과 제도에 스며들고 있는 인종주의에 대처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일상의 차원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규정짓고 판단하는 말에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새까만 애', "무자비한 무슬림', "잔인한 조선족" 같은 스테레오타입을 반복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차별과 혐오는 농담처럼 던지는 사소한 말 속에도 깃들기 때문이다. 혐오의 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중요한 건 듣는 귀를 여는 일이다. 알아듣는 이에게 비명은 소음이 아니라 목소리가 된다. 피부색이 다른 이주노동자에게서 생활 이야기를 듣는 일, 난민신청자에게 어떻게 한국까지 오게 되었는지 듣는 일은 인종차별에 맞서는 행동의 시작이다. 타자의 몸에 덧씌워진 고정관념을 기꺼이 내려놓고 귀 기울여 들으려는 태도야말로 주체와 타자, 나와 낯선 이를 이어주는 끈이 된다. 말하고 듣는 행위는 동등한 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2004년부터 시행된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인종차별과 권리침해에 대처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인권의 차원에서 이주노동에 대한 제도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 혐오의 말이 도를 넘고 있고 극우의 정치세력화가 우려되는 요즘이기에 인종주의가 더 이상 힘을 얻지 않도록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법과 제도 차원에서 인종주의에 맞서기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모든 차별은 연결되어 있다. 존재의 대연쇄, 아니 '차별의 대연쇄'랄까? 차별받는 소수자가 다른 소수자를 더 아프게 차별하는 경우와 종종 맞닥뜨리게 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혹시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누가 더 아프고 누구의 상처가 더 많이 곪았는지 경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2007년부터 여러 차례 국회에서 발의되었으나 2019년 현재까지도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법은 최대치를 해주지 않지만 인종, 민족, 계급, 성, 성적지향, 장애유무 등을 기준으로 인간을 구분하고 값을 매기는 모든 차별에 대항하는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해줄 수 있다. 차별금지법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지만 인권의식을 벼리는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다. 

 


다 읽은 건 20.03.08.이었는데 다시 내용을 훑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데 이틀 남짓의 시간이 걸렸다. 인종주의의 출발과 그것이 인류사에 끼친 해악들을 살피고 오늘날까지 세계 각지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인종주의의 민낯을 마주하고 성찰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더 예민한 인권의식을 바탕으로 교실에서, 학교에서 차별과 폭력에 맞서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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