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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신한은행에서 발간한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를 읽다가 한 방 먹은 듯했다. 우선은 올해 기준 대한민국 가구 총자산의 76%가 부동산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거기 더해 1인가구인 나의 소득 구간은 대략 2구간에 해당하는데 해당 구간의 평균 자산은 1억 190만원이고 그 중 부동산은 4,894만원이라니, 나는 당장 먹고 죽을래도 없는 돈이 대체 누구의 주머니에 들어있다는 것인지 생각하니 씁쓸해졌다. 

 

 문제는 격차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매년 수출액이나 해외여행 출국자의 수는 최고를 경신하는데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던가. 절대 빈곤으로 내몰리고 기초생활수급자 내지 차상위계층에 머물며 자산 증식의 기회를 봉쇄당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난다는 통계 자료를 보았다. 그런 와중에도 일 년 사이에 오억이 올랐네 십억이 올랐네 하는 이야기는 뭇 사람들의 가슴을 크게 부풀린다. 양육자들도 예외가 아니라 여러 차례 찾아왔던 부동산 투자 성공의 기회를 놓쳤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의 본가를 분양 받았다. 작년 팔월에 입주했고 지금까지 일억이 올랐다고 한다. 

 

 그나마 결혼한 친구들의 경우 근면성실하게 저축했고 또한 운 좋게 양가의 도움을 구할 수 있어 생활 근거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 아직 현관까지만 부부의 것이고 나머지는 은행 몫이라며 겸연쩍게 웃긴 하지만 은행 대출도 고객의 상환 능력을 보고 해준 것이니만큼 본인의 자산이라고 해야지 당연히. 취업 준비 기간 동안 당연하다면 당연히 경제 활동도 쭉 쉬어왔고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나는 부쩍 조바심이 난다. 

 

 저번 주 모임 때 결혼하고 싶냐는 질문에 꼭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할 수 있다면 하고 싶다고 했더니 내 집 마련을 위해서라도 결혼은 가급적 하길 권한다는 진심 어린 조언이 뒤따라왔다. 이백 비혼이 사백 결혼을 당해낼 수 없게 설계된 사회가 녹록치 않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신혼부부 특별공급 주택은 언제 어디나 있고 1인 가구의 청약 가점은 있으나 마나한 수준이니 전적으로 공감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혼이 어디 하고 싶다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으니까 다시 혼자 벌어서 혼자 살기 마땅한 집을 갖기 어려운 한국 사회를 욕하는 출발점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대학 입학과 함께 본가를 떠나 살았던 여러 공간들을 되새겨보면 대략 절반 가량은 늘 타인과 함께였다. 기숙사 생활 3년과 군생활 2년은 따로 나의 주거공간에 대해 고민할 필요도 겨를도 없었다. 혼자였던 자취생활은 보통 한 해, 짧게는 몇 달, 길어야 두 해를 살고 떠날 곳이었고 그마저도 월세살이를 하며 본가에서 방세 때문에 손을 벌리거나 갓 두 자리 수 호봉의 상당 부분을 고정적으로 지출해야만 했다. 모두가 그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여유 있는 집에서는 학부생 때부터 내가 친구와 살며 월세를 나눠내는 아파트를 본인 소유로 매매해주기도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전셋집을 얻어준다는 얘기를 접하고는 왜 나는 그러지 못하는가를 잠시 생각하고 이내 치워버렸다. 오래 생각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닐뿐더러 나를 더 괴롭게만 할 테니까 말이다. 

 

 공동 생활 공간이었던 기숙사와 군대 생활관은 그래도 주거비가 따로 들지 않았으니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졸업이든 군 복무든 생애 내 수행해야 할 과업을 위해 필요했고, 이는 현재의 내 삶에 충실할 뿐 미래의 일을 계획할 수 있는 주거공간은 아니었으니 논외로 해야 할 듯하다. 45만원, 22만원, 45만원씩 월세를 받고 관리비는 별도였던 빌라와 아파트는 다행히 좋은 기억들이 더 많다. 내 한 몸을 누이기 충분한, 계절별 물건들을 수납할 수 있는 규모의 공간이 있고 이따금씩 친구들을 초대해 밥과 술을 먹고 몇 명 재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답게 살고 있다는 감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가끔 서울에서 자취하는 친구들의 공간에서 마주한 불편과 충격이 동시에 생각난다. H의 반지하, K의 고시텔, 동생의 옥탑방은 당시 비수도권의 내 주거공간보다 보증금도 월세도 비쌌지만 좁고 낡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 공간들은 직장과, 학교와 가깝다는 입지적인 이점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주거비용에 투자할 수 있는 한계가 뚜렷한 청년 세대에게는 선택이라는 이름의 강요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면 입안이 운동장처럼 깔깔해진다. 

 

 2011년 출범한 <민달팽이유니온>은 청년 세대의 주거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비영리 민간단체이다.  “새롭게 주거취약 계층으로 대두된 청년층의 당사자 연대로, 비영리 주거 모델을 실험하고 제도 개선을 실천해 청년 주거권 보장과 청년 주거 불평등 완화에 기여한다.”는 목표에 공감했다. 얼마 전 같이 학생운동을 하던 벗과의 대화에서 단체를 소개했다가 대번에 “평생 내 집 없이 살아도 괜찮겠어? 근면성실하게 일한 K선배 같은 사람이 진작 대출 끼고 집 안 샀다가 지금 고생하는 것처럼 전국민이 세입자로 사는 세상이 옳은 거야?”라는 힐난을 들었다. 

 

 청년 세대의 주거권과 부동산 투자로 자산 증식을 꾀하는 중산층의 욕망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걸까. 친구들을 초대하기에는 너무 좁고 화구가 한 개뿐인데다 찬장도 작아서 생활이 못내 불편한 이 집도 내가 은행대출을 받아 독립 아닌 독립을 시작할 수 있는 최소한이었는데, 나는 더 넓고 쾌적한 집으로 갈 수 있을까. 가끔 친구들 집에 놀러갔을 때 느끼는 본인을 비롯한 가족들의 공간으로 가꿔나가고 있구나 하는 부러움이 나의 만족감과 보람이 되는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하는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렇다고 YOLO로 대책 없이 사는 것은 성격에 맞지 않으니 비좁은 범위 내에서만이라도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고 부지런히 모아 미래를 대비해야겠지만 말이다. 

 

 청년 세대의 주거권 문제는 사실 노키즈존 문제와도 맥이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회가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 청소년, 청년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투명하게 보이는 대목이 아닐까? 영유아와 그 보호자를 공적 공간에서 배제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각박한 사회는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들까지도 부당하게 대우하기 쉽다. 그리고 직간접적으로 이를 체험한 사람들은 사회의 자살을 꿈꾸기 마련이다. 사회화 과정에서 흠뻑 세례 받은 전체주의 사고를 걷어내더라도 내가 살아가는 사회 공동체가 지속 가능했으면 하는 희망은 여전하다. 청년 세대의 주거권 문제가 내 삶의 질에 관한 고민을 넘어 한국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개선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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