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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하면서 닮아간다는 우리말이 있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그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오죽하면 부처님께서도 생선을 싼 노끈에서는 비린내가,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기가 나기 마련이니 곁에 있는 사람을 잘 두라고 하셨겠는가. 하지만 내가 선택할 수 없고 선택하지도 않은 주변 사람의 대표 주자인 원가족을 생각해 보자. 미디어에서 안온하고 사랑으로 가득한 공간인 것처럼 묘사하지만 톨스토이의 유명한 구절처럼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세상에 둘도 없는 끔찍한 가정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면도 미워하는 면도 떼어낼 수 없이 뒤섞인 원가족을 생각하면 그래서 마음이 복잡해진다. 

 

 원가족 중에서도 양육자들은 더더욱 각별하다.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한 사람들이고 혈연으로 이어진 일명 ‘천륜’이지만 머리가 굵어지면서 일상 속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불거졌다. 겉으로 드러나는 내 행동을 못마땅해하는 양육자의 시선과 지적이 폭력적으로 느껴졌고 견디다 못해 경제적으로 조금 무리해서까지 본가를 나왔다. 그러길 다섯 달째, 끊임없이 나를 통제하려던 분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나니 확실히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 면이 있다. 동시에 여유를 가지고 내 내면과 생활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면서 문득문득 내 삶에서 그들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양육자들의 성격 중에서는 닮고 싶지 않은 부분이 더 많았다. 특히나 생활방식에 대한 잔소리가 그랬다. 그런데도 이번 추석 연휴를 맞아 본가에 가서는 자기 방 불을 끄지 않고 외출하는, 간식을 먹고 쓰레기를 그 자리에 방치하는, 좌변기를 마주하고 서서 소변을 보는 동생을 그냥 눈감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몇 번을 고민하다 나름대로 부드럽게 지적해보았으나 수긍하는 모습도 그 때뿐, 달라지지 않는 모습을 보고 답답했다. 그리고 어쩌면 양육자들이 못마땅해한 내 모습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내 눈에 밟힌 동생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닮고 싶지 않았는데 닮아버린 점이 있는가 하면 지금도 닮기 싫은 점은 역시 소수자에 대한 혐오일 것이다. 어머니께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중국인 건설노동자들이 한국 건설현장에 유입되면서 아파트 부실공사가 늘었다거나 인력사무소에서 일하는 내 친구의 어머니에게 들었다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약삭빠르게 일은 적게 하고 대우만 바란다는 식의 얘길 하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시어 없는 살림에도 늘상 나눔을 실천하시고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선량한 분에게서조차 발견할 수 있는 제노포비아에 새삼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곧 환갑을 바라보시는 나이에, 세상을 향한 창구가 한정되다 보면 더 편견에 빠지기도 쉽겠지 생각한다. 동시에 나도 나중에 저러지 않으려면 언제나 접한 정보가 사실인지, 믿을 수 있는 것인지 판단하는 자세를 가져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도 닮고 싶은 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평소 지나치다 싶을 만큼 아끼면서도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스스럼없이 지출할 줄 아는 자세는 내 생활을 지탱하는 줄기이기도 하다. 옷은 좀 헐하게 입을 수 있더라도 먹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것 역시 양육자들로부터 물려받은 태도이다. 가끔은 그런 태도가 지나쳐 제발 옷을 좀 사입으라고 잔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꼭 필요하지 않은 옷을 사는 것이야말로 환경 오염의 주요 원인이라고 하지 않는가. 지금도 내 옷장에는 구입한 지 삼 년 넘은 옷들이 한가득이지만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이라 필요한 시간과 장소, 상황에 맞게 적절히 꾸미고 나갈 수 있다. 

 

 내게 깃들어 있는 양육자들의 모습을 돌아보는 일은 쉽지 않다. 케케묵은 프로이트식의 정신분석을 꺼내올 필요는 없겠지만 양육자란 자식에게 있어 늘 애증을 동반하는 존재이지 않을까. 양육자에게 있어 나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말이다. 내 안의 양육자의 모습을 인정하되 그것들을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다듬어 나가는 일이야말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후회없이 기꺼운 삶에 가까워지는 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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