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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영국의 여성참정권 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서프러제트Suffragette>의 국내 개봉 소식에 6월 말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그리고 6월 26일, 강변 CGV에서 40대 남성이 옆자리 여성 관객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한 후 현장에서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소식을 듣고 여성참정권 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를 상영하는 곳마저 여성 혐오범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생각에 멍했다. 좀 더 여유 있게 볼 생각이었지만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어져서 다음날 바로 영화관을 찾았다.

 


 주인공인 가상 인물 ‘모드 와츠’는 불합리한 현실 속에 있으면서도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현재의 소소한 안온함에 매몰된 인물이다. 그렇지만 같은 세탁공장에서 일하는 남편은 모드보다 노동시간이 적고 건강에 무리가 덜 가는 배달을 하는데도 더 많은 임금을 받는다. 또한 어린 여공들을 성적으로 농락하는 고용주의 모습에도 저항할 수 없는 등 모드가 경험하는 성별 임금 격차, 직장 내 성폭력 문제와 같은 일상적 괴로움은 현실이다. 그러므로 그가 여성 참정권(vote for women)을 요구하는 활동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은 어쩌면 순리일 것이다. 지금과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그녀의 마음속에 싹트는 것이다.

 


 기존의 남성 중심적 질서에 의한 억압과 수탈을 직시한 모드는 결국 “법을 파괴하는 자가 아닌, 법을 만드는 자(not law breaker, but law maker)”를 택한다. 가정에서 추방당한 모드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 여성연맹의 자매애는 각계각층의 단원들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특권에 익숙한 이는 평등을 억압으로 여긴다는 말이 생각난 것은 모드의 남편 소니의 모습에서였다. 그는 이웃의 평판 등 보잘것없는 명예에 집착하며 모드보다 노동시간이 적은데도 더 많은 보수를 받음은 물론 가정의 경제권과 친권을 행사한다. 또한 세탁공장 여공의 삶은 각종 산업질환 등 산재에 노출되어 있으며 저임금은 물론 직장 내 성폭력 문제와 함께 굴러가고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카메라의 존재였다. 이 물건은 경찰이 여성동맹의 집회를 감시하고 채증할 때나 국왕이 참석한 승마대회를 촬영하는 등 지배를 위한 감시의 도구 또는 권력만의 기록 도구로서 사용된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에밀리가 달려오는 말 앞으로 뛰어든 것은 동시에 카메라 앞으로 돌진하는 것이기도 하다. 에밀리는 주류 질서가 외면하는 약자의 외침을 정면으로 응시하라며 온몸으로 부르짖은 것이다.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지만, 특히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으며 너는 아무 것도 아니다” 같은 익숙한 말과 차가운 시선에 반격을 날리는 영화였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deeds not words), 서프러제터들은 혐오와 억압 위에 뻔뻔한 관성으로 굴러가는 기존 질서를 뒤엎었다. 보다 평등한 세상을 위해 보편적 권리를 외친 그들의 목소리는 시대와 지역이 바뀌었을 뿐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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