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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양육자와 나는 어릴 적부터 갖은 일로 부딪혀댔다. 양육자들의 헌신적 보살핌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던 영유아기 역시 나의 불만족을 표현할 길이 그저 울음뿐이라 유달리 시끄러운 아기였다지. 남양육자가 내 성장 과정에서 두드러지지 않는 것은 본인의 내성적인 성격에 더해 양육이 여성의 영역이라는 성차별적 편견 때문이겠지만 상대를 떠나서 내가 보호자들과 꾸준히 충돌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본령이고 2인 이상이 생활하는 가정은 정치의 본산이 아닐까? 그런 가정에서 나이 서른을 넘겨서까지 독립하지 못한 죄로 복장에 대해 사사건건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왕복 세 시간씩 걸리는 통근길도 괴로웠지만 여양육자의 복장 관련 비난으로 대표되는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가정에서 겪는 공격이야말로 탈가정을 결심하게 된 주 원인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정치적 메시지가 적힌 단체 티셔츠를 입고 밥상머리에 앉은 내게 “엄마는 네가 이런 옷 안 입었으면 좋겠다. 엄마랑 같이 사는 동안은 이런 옷 좀 입지 마라.”고 한다거나, 운전학원 예약이 있어 츄리닝을 입고 나가는 내게 남들 눈을 좀 생각해서, 품위 있게 입고 다니라며 이런 옷 입고 양육자들이 일하는 가게에 오면 부끄럽다고 소리를 지르는 식이다. 근 2년 간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취준생 입장에서 양육자들의 말에 토 달지 않으며, 최대한 얼굴 마주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아침은 혼자 차려 먹고 점심은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먹고 저녁만 함께 먹은 뒤 곧바로 자리를 피했었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도 “꼭 공무원처럼 공부한다.”는 힐난에 상처 입기도 했었지만 오죽 답답하면 그런 말까지 했을까. 원래 누구나 본인이 아는 만큼 보이는 거니까 안타깝게 여기고 넘어가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갈등 속에서 괴로워하다가, 어쩌면 다소 성급하게 본가를 떠난 지도 벌써 두 달을 꽉 채워간다. 왕복 세 시간 거리인 만큼 주말마다 갈 수도 있는 환경이건만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본가에 갈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긴, 지난 주 대전 모임 때문에 들렀다 가려고 오랜만에 가게를 찾았을 때도 대번에 옷차림을 지적당했다. 저라고 어머니 모습 중에서 보기 싫은 것들 없지 않고 그렇다고 일일이 지적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으니 말 안 한다. 제게도 그래주셨으면 좋겠다고 몇 번을 말해도 그때뿐이고 급기야는 너는 무슨 말 한 마디를 못하게 한다고 수동공격을 하시니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최대한 접촉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끊이지 않는 갈등은 기실 옷 때문만이라기보다는 자식에 대한 양육자들의 과도한 간섭 때문이겠지만 나의 음주 생활을 제외하고는 옷 때문에 가장 많이 부딪힌다는 건 그만큼 선명하게 나의 개성이 드러나는 지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방송부 2학년 ㅈ도 “선생님 옷장 소개 브이로그 나중에 찍어주세요.”라고 할 만큼 내 옷장에는 별의별 옷들이 가득하다. 그런 옷들 중 속옷이나 양말, 수건 등을 제외하면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게다.
가장 먼저 각종 단체 티셔츠가 나온다. 색과 쓰여진 글씨는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이라면 쿨 매쉬 소재의 반팔이라는 점이다. 그 중 한 갈래는 새내기 적부터 졸업반 시절까지 전국으로 다닌 현장활동의 유산이다. 4대강 사업 반대, 무상급식 도입 등 사회적 의제가 등판에 번호별로 박혀 있는데 사실상 운동복으로만 입는다. 저번 러닝 마치고 간 뒤풀이 자리에서는 혹시 교회 다니시냐고 질문 받은 게 생각나서 피식 하게 된다. 생명, 평화 어쩌고가 적혀 있었거든. 그런 옷들을 여양육자가 싫어하는 건 아마도 여양육자와의 결혼 전 남양육자가 어느 지역구 의원의 선거운동에 투신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여양육자의 여동생이 운동권 대학생이었기 때문인 걸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또다른 갈래는 군생활의 유산이다. 내가 복무한 부대는 여름과 겨울마다 중대티라고 부르는 스포츠 의류를 보급해줬다. 영문 부대명과 마크가 여기저기 새겨져 있지만 땀이 잘 빠지고 금방 말라서 운동할 때는 이만한 게 또 없다. 데모할 때 입던 옷과 시위 진압 때 입던 옷이 수납장의 같은 칸에 들어 있다는 게 조금 블랙 유머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다음으로는 형형색색의 하와이안 셔츠 차례다. 온라인에서 처음 만나 벌써 십년지기 이상이 되어버린 ㅈ과 만날 때면 꼭 역전의 오래된 구제샵에 들른다. 가게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을 때면 나와 인연이 닿는 옷이 한 벌쯤 있을 것만 같은 묘한 기대감에 사로잡힌다. 그 가게에서 산 것이 네 벌, 인터넷에서 산 것이 한 벌, <걸캅스>를 재밌게 보고 극중 이성경 배우가 입었던 것과 똑같은 옷이다. 청색 계열이 세 벌, 적색 계열이 두 벌인데 그나마 청색 계열 중 두 벌은 단정한 편이라 종종 입고 출근한다. 미술 선생님 왈, “그 옷 정말 여행 생각 나게 만들어요. 저는 선생님 그 옷 입으신 거 보고 여행 가는 꿈도 꿨다니까요.” 하시는 걸 보면 주위 사람들에게 제법 영감을 주는 멋진 옷이다. 몸에 열도 많고 땀도 많아 여름을 싫어하지만 하와이안 셔츠를 생각하면 조금은 싫어하는 마음이 누그러든다. 하와이안 셔츠를 걸치고 파나마를 쓴 채 거리를 활보하면 친구들은 잘 어울린다고 칭찬해 준다. 또한 짜임새 있게 정해진 일상을 사는 만큼 복장에서 취할 수 있는 일탈을 만끽하고 싶은 내 뜻과도 잘 맞지만 역시 여양육자는 거지같이 입고 다닌다고 싫어하신다. 그러니 내가 본가에 가고 싶지 않아할 밖에. 복장이라는 게 단순한 옷차림을 넘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여 자아 실현에 기여하는 면이 있는 건데 본가에서는 나의 체중과 옷차림을 비롯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나의 모습에 대해서 성가시게 하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어쩌겠는가.
끝으로 올해 만난 신세계, 생활한복이다. 오래 전부터 통풍이 잘되어 시원하면서 몸에는 편한, 그러면서도 공식적인 업무 시간에 어울리지 않게 격식이 파탄나지 않은 옷을 입고 다니고 싶었다. 예전의 근무지에서는 하와이안셔츠를 입고 출근했다가 교장실로 호출당해 “뫄 선생. 어디 놀러가나봐?” 같은 소리를 듣거나 라운드넥 티셔츠를 입었다고 단정하지 못해서 학생들 보기 안 좋으니 다음부터는 칼라가 있는 셔츠를 입으라고 교과부장에게 한 소리 듣기도 했다. 그나마 지금 근무지는 복장 가지고 별다른 간섭이 없는 것 같은 게 정장을 입을 때나 청바지에 금목걸이와 두 주먹이 큼지막히 박힌 스웩 넘치는 티셔츠를 입을 때나 어느 누구도 핀잔 주는 사람이 없다. 그래도 이왕이면 더 편한 옷을 입고 싶은 욕심이 있어 생각 끝에 승복 전문 쇼핑몰에서 보랏빛 저고리와 바지를 샀다. 입고 간 첫 날, 상상 이상의 편리함과 동료들의 호의적인 반응에 힘입어 검정, 초록을 추가로 주문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접한 친구들의 반응은 “아전교조선생님”, “윤리 선생님 외 생활한복 금지...”, “왠지 우리 세대 한문선생님인듯한 느낌적인 느낌이넹”, “쟈기야 진짜 미친놈같다” 등 폭발적이었다. 농반진반으로 입는 순간 관록이 십 년쯤 올라가는 효과를 주는데 학생들에게도 괜찮은 반응이라 은근히 뿌듯하다.
이렇게 옷장을 매개로 삶의 이야기들을 이끌어 내다 보니 근 십 년부터 최근 반 년까지의 생활이 한 손에 잡히는 듯하다. 방학을 앞두고 매일매일 없는 힘을 짜내어 버티고 있는 와중이다. 이렇게 삶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는 건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온 나를 돌아보며 위로와 격려를 스스로에게 보내고 앞으로의 시간도 잘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준다. 오늘 밤은 굶고 자기보다 넷플릭스로 좋아하는 드라마를 한 회차 보면서 건강한 야식을 먹고 자야지. 내일은 내일의 플랭크와 아침식사, 출근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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