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시민 혹은 소비자들의 집합 (16.08.29)
시사인 제467호의 커버는 “분노한 남자들”이라는 제목이었다. 천관율 기자는 “Girls Do Not Need A Prince” 티셔츠 사태 이후 온라인 공간에서 폭발한 메갈리아 논란에 대한 남성들의 반응을 수집하기 위해 대한민국 최대의 위키 사이트 “나무위키”의 ‘메갈리아’ 항목을 분석하였고 그것을 기사로 써내었다. 기사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메갈리아 현상은 ‘남성혐오’가 아니며 스스로를 ‘선함’과 ‘정의로움’으로 규정하는 남성들의 자의식은 최근의 워마드식 혐오 발화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작년 ‘메르스 갤러리’의 등장을 기점으로 주된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이기에 흥미롭게 읽었다. 또한 혐오가 약자와 소수파를 낙인찍는 강자의 무기이기 때문에 ‘남성혐오’는 성립될 수 없다는 기존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라 공감하며 읽었다.
물론 세상에는 다양한 의견과 지향이 존재하며 내가 공감하며 읽은 글이라 하더라도 누구에게는 언급의 가치도 없는 허섭쓰레기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시사인의 이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정기 구독 해지 인증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는 이용자들의 ‘시사인 절독 선언’이 줄을 이었고 이에 동조하는 댓글들이 주를 이뤘다. 재밌는 건 이 사태의 계기적 사건인 김자연 성우의 티셔츠 인증 직후의 일들과 유사한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김자연 성우의 티셔츠 인증 직후, 성우가 참여한 게임 게시판 고객문의 게시판에 “게임 이용자를 능멸하는 저 성우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게임을 할 수 없다.”며 성우를 교체할 것을 요구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작업물 삭제로 이어졌고 이에 대해 음악, 웹툰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김자연 성우 지지 의사를 표명하였다.
이 때, 김자연 성우 지지의 뜻을 밝힌 창작자의 팬을 자처하는 불특정 다수의 만류가 있었다. 제발 이런 이슈에 대해 발언하지 말고 좋은 음악 또는 그림을 계속해서 보여달라는 요청으로 요약되는 것들이었다. 이런 요청에 대해 자신의 페미니즘에 대한 소신을, 김자연 성우의 노동권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힌 창작자들에게는 더 이상 만류가 들어오지 않았다. 앞서 만류를, 요청을 보내던 이들은 웹툰 작가의 별점을 깎고 가수의 소속사에 항의메일을 보내는 등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가능한 조치들을 취했다.
시사인 절독 선언과 이 일은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바로 자신을 ‘소비자’로 명확히 인식하고 대립항을 ‘판매자’로 인식하고 있기에 이 같은 행동을 구매력을 가진 자신의 뜻을 거스를 경우 바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사실 시민운동의 방법 중 하나로 ‘조중동 불매운동’. ‘남양 불매운동’, ‘옥시 불매운동’, ‘일본 우익전범기업 불매운동’ 같은 행동들이 있어왔다는 점에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닌 듯하다.
그보다 더 곱씹어 생각해보게 되는 지점은 정의당 문예위의 김자연 성우 지지 논평 이후 탈당을 선언한 구 정의당 당원들의 심리이다. 정당 활동이 단순히 당비를 납부하고 당의 소식지 등을 전달받는 구매 활동 이상의 것이라면, 당원으로서 그들은 문예위의 결정에 반발하더라도 당내 의사소통기구를 통하여 반대 의견을 개진하고 공론장에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탈당을 선언한 것은, 사실상 공동체의 시민이기를 포기하고 소비자를 자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시사인 절독 선언 역시 마찬가지이다. 구독하던 언론이 자신의 의견과 배치되는 논조의 글을 실었고,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독자 투고를 비롯해 충분히 반대의 뜻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내 의견과 다른 언론이기에 과감히 구독을 해지하고 그 돈으로 치킨이나 사먹겠다, 는 태도는 스스로를 입체적 시민이 아닌, 평면적 소비자로 전락시키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몇 자 적어보았다.